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신 타이거스 (문단 편집) === [[프랜차이즈 선수|프랜차이즈]]는 해설이나 해! === 불구대천의 숙적 요미우리가 [[요미우리 자이언츠/순수혈통주의|감독 선임에서 까다롭기 그지없는 순혈주의를 고집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대대로 구단의 선수 출신이 감독을 맡으면 팀이 막장화되는 경향이 있어서[* 멀게는 [[후지무라 후미오]], [[가네다 마사야스]] 항목 참조.] 구단에서 활약했던 스타선수들이 은퇴하고 감독을 맡는 것을 팬들이 달가워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2009년에 부임한 [[마유미 아키노부]] 감독은 야구의 급격한 예능화로 2011년 시즌을 끝으로 경질돼 버리고 말았고 그 뒤를 이은 [[와다 유타카]]는 2012 시즌을 제외하고는 모조리 [[클라이맥스 시리즈]]에 진출했을뿐더러 2014년엔 [[2014년 센트럴 리그 클라이맥스 시리즈|가을 야구를 너머]] [[2014년 일본시리즈|일본시리즈 한 번]] 나가면서 그럭저럭 체면치레는 했다지만 재임 기간 내내 예능 야구와 정상 야구를 왔다 갔다 했다. 그러고 와다 뒤의 [[카네모토 토모아키]]는 그야말로 '''[[명선수는 명지도자가 될 수 없다]] & [[외야수]] 출신 감독은 망한다 & 프랜차이즈가 감독 맡으면 팀이 망한다 이 세 속설을 한 번에 증명하고 말았다.''' 그래도 요미우리랑은 다르게 순수 한신 성골만 감독직에 앉는 것이 아니다. 2010년대 한신 감독 중 아예 타 구단 커리어가 없던 사람은 '''성골''' [[와다 유타카]]가 유일했으며 나머지 마유미 아키노부, 가네모토 도모아키, 야노 아키히로는 전부 타 구단에서 커리어를 시작하고 한신으로 이적한 선수들이었다. 1962년의 양대 리그 이후 첫 [[센트럴 리그]] 우승[* 참고로 이 우승이 한신이 호랑이띠 해에 거둔 유일한 리그 우승이다.]과 2년 뒤인 1964년 센트럴 리그 우승은 '''요미우리 출신'''의 [[후지모토 사다요시]] 감독 밑에서 거두었다. 1985년의 유일한 [[일본시리즈]] 우승은 팀 레전드인 [[요시다 요시오]] 감독 밑에서 일구어냈지만 불과 2년 만에 최하위로 전락하면서 막장화. 그 후 [[무라야마 미노루]][* 참고로 1970~1972년에도 플레잉 매니저(감독 겸 선수)를 맡은 바 있다. 그러나 성적 부진을 이유로 1972년 선배 [[가네다 마사야스]]에게 감독직을 넘기고 그해를 끝으로 선수로서도 은퇴했다.]-[[나카무라 카츠히로]][* 한신-오릭스에서 감독이나 프론트 직을 맡으면서 맡은 트레이드나 FA, 외국인 선수 영입 등에서 재미를 본 적이 거의 없고 [[탈쥐효과|오히려 내보낸 선수들이 맹활약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그래서 일본에서의 별명은 이름 '카츠히로'를 비튼 '마케히로'. 이 정도로 한심한 감독임에도 의외로 팀 역사 상 가장 긴 임기를 기록한 최장수 감독이다. 2015년 9월 23일 급성 [[심부전]]으로 사망했다.]-[[후지타 타이라]]-그리고 돌고 돌아 다시 감독을 맡은 [[요시다 요시오]] 등등 선수시절에는 팀을 대표하던 스타들이 줄줄이 감독을 맡았지만 돌아온 것은 길고 긴 암흑기. 1987년부터 2002년까지 16년간 6-6-5-6-6-'''2'''-[[4466566664|4-4-6-6-5-6-6-6-6-4.]] 중간에 2(1992년)가 하나 보이기는 하지만 그 주변 성적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뭔가가 잘못돼서''' 1년 반짝한 거다.[* 사실 그해 우승팀 야쿠르트의 성적은 69승 [[한신 타이거스/1992년/9월/11일|1무]] 61패로 우승팀 치고는 그리 좋은 성적도 아니었고(그래도 일본시리즈에서는 세이부를 상대로 7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아쉽게 물러섰다) 1위와 최하위 간의 게임 차가 '''9.0게임'''밖에 나지 않았다. 1위 야쿠르트와 4위 히로시마와는 '''3.0게임 차'''였고 히로시마조차도 66승 64패의 성적으로 우승을 노릴 정도로 대 난전이었다. 이해 한신도 67승 2무 63패로 2위팀 치고는 승률이 높은 편도 아니었다. 그나마 그 2위도 요미우리하고 공동 2위였다. 참고로 이해 감독은 [[나카무라 카츠히로]]. 그리고 이 성적이 나카무라가 무능함에도 불구하고 5년 7개월이라는 팀 역사상 최장수 임기를 기록한 결정적인 이유였다. ~~그러나 다음해부터 다시 폭망~~][* 여담으로 [[괴짜가족]]의 작가 하마오카 켄지의 작품인 [[4학년 1반 차렷!]]의 9권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소재로 썼는데, 그해 센트럴 리그 우승 팀을 응원한 캐릭터는 '''단행본 11권 표지 단독 출연'''이란 상이, 꼴찌 팀을 응원한 캐릭터는 '''한 달 동안 출연 정지'''라는 벌칙이 걸렸다.[* 다만 작품 자체가 11권으로 완결이 났기 때문에 사실상 완결권 표지 단독 출연 및 마지막회까지 출연 정지가 되었다. 근데 그것도 최종화 직전 에피소드에서 판명이 났다는 게 함정.] 참고로 주인공 카나가와 켄은 한신을, 반장은 [[야쿠르트 스왈로즈]], 골수 요미우리 팬인 키요시는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부는 [[요코하마 디엔에이 베이스타즈|요코하마 타이요 훼일즈]]를, 히데노야 분타는 [[히로시마 도요 카프]]를, 코지는 [[주니치 드래곤즈]]를 응원했다. 참고로 분타는 오사카 출신인데, 한신은 역시 무리라면서 카프를 응원했다.] 무엇보다도 최하위인 6만 10번을 찍었다. 그 후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야쿠르트]]를 4번의 리그 우승과 3번의 일본시리즈 우승으로 이끌며 [[세리그]]의 신흥 강호로 만든 데이터 야구(일명 ID 야구)의 대가이자 '''[[난카이 호크스]] 출신'''인 [[노무라 카츠야]] 감독을 기용하면서 3년 간의 리빌딩을 거쳐[* 하지만 노무라 감독 시절에도 '''3년 연속 꼴찌(666)'''를 찍을 정도로 성적은 썩 좋지는 않았다. 결국 이 성적과 아내 노무라 사치요의 탈세혐의로 인한 체포 등이 악재로 겹치며 노무라는 2001년을 끝으로 감독직을 사임했다. 그러나 이 3년 연속 꼴찌 대신의 리빌딩이 막장이던 팀을 재건했다고 재평가받으며 최근 평은 그닥 나쁘지 않다.], '''[[주니치 드래곤즈]] 출신'''인 ~~콩라인(~2013)~~ [[호시노 센이치]]를 데려오고 나서 첫 해인 2002년은 비록 B 클래스인 4위로 끝났지만 2003년 18년 만의 센트럴 리그 우승을 거두면서[* [[일본시리즈]]에선 '''[[요미우리 자이언츠]] OB이자 영구결번 No. 1''' [[오 사다하루]]의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에게 3승 4패로(2연패-3연승-2연패) 패배하고 말았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대대적인 명예회복에 나서기 시작했다. 2003년 세리그 우승 후 2005년 [[오카다 아키노부]] 휘하에서 또다시 세리그 우승을 거두었지만 [[33-4|닛폰시리즈에서 참패했다.]] 2010 시즌까지 A 클래스(3위권)를 유지하는 등 회복세를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역사 문서에 2008, 2013년 시즌 요약을 보면 알겠지만 상위권에 있었다고 해서 막장기가 안 보였던 건 아니다. ~~그리고 2013년 호시노는 콩라인 탈출과 [[교진군]] 타도라는 인생 목표를 동시에 달성~~ 하지만 그 회복세도 거듭되는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의 삽질로 빛이 바래던 중에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 [[오카다 아키노부]]에 이어 또다시 구단 OB인 [[마유미 아키노부]]가 2009년부터 감독을 맡으면서 다시 부진에 빠졌다.[* 승률 5할에 근접한 4위가 뭐가 부진이냐고 할 사람도 있겠지만 2011년의 한신은 시즌 전 전문가들의 예상에서 거의 만장일치의 우승 후보였다. 게다가 이미 한신이 '''그 [[교진군|요미우리]]를 제치고''' 팀 연봉 지출 1위까지 먹은, 요미우리더러 [[돈지랄]]이라고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지리멸렬한 경기 내용으로 4위에 그쳐 시즌 막판에는 고시엔에서 열리는 홈 경기에서 관중 동원 2만명 대를 찍는 등 팬들의 불신도 커진 상태였다. 한마디로 2011년의 [[두산 베어스]] 비슷한 상황이었던 것.] 설상가상으로 2007년부터 2008년까지 활약했지만 결국 마유미 감독에 의해 방출되었던 외국인 투수 [[라이언 보겔송]][* 참고로 라이언 보겔송의 아내인 니콜은 [[https://www.youtube.com/watch?v=ty7CUh5U9qM|한신 타이거스 구단 CF]](정확히는 고시엔 구장에 주차가 어려우니 [[한신 전기철도|자사]] [[한신 본선|전철]]을 이용해라는 광고)에도 출연했다.]이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로 가서 괴물급 활약을 했었다. 그것도 [[배리 지토]]를 대신한 5선발로. 이 때문에 '''같은 [[간사이]] 지방의 [[오사카 킨테츠 버팔로즈]]에서 선수 생활을 했고''' 감독이 되고 나서 킨테츠와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닛폰햄]]의 두 팀을 리그 우승으로 이끈 '''명장''' [[나시다 마사타카]] 감독을 선임하자는 주장이 팬들 사이에서 나왔고 보도 매체에서도 그렇게 전망[* 그 외에는 팀에서 수석 코치를 한 번 역임했으며 2010년까지 2군 감독으로 2군팀을 우승으로 이끈 한신의 프랜차이즈 유격수 스타 히라타 카츠오가 강력한 후보로 물망에 올랐다. 하지만 이쪽도 구단 OB이고 외압에 의해 2군 감독에서 강제로 물러나야만 했다. --그래도 한 주에 6일씩 예능을 찍어댄 마유미보단 나을 거 같은데?--]했으나 웬걸. 오카다-마유미에 이어 구단 OB인 ~~와다칸~~ [[와다 유타카]] 타격코치를 감독으로 선임하며 OB 감독으로 3연타를 날렸다.[* 그리고 나시다는 2016년 [[라쿠텐 골든이글스|도호쿠]] 감독이 됐다.] 과연 와다 감독이 다시 한신을 일으켜 세워서 OB 감독 막장화 징크스를 털어낼 것인지 아니면 198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까지 계속 된 암흑시대 시즌 2를 찍을지 귀추가 주목되었으나... 2012년 와다 감독은 우려했던 대로 센트럴 리그 5위를 찍으며 한신의 흑역사를 찍고 있다. 특히 2012년 한신 타선은 아예 멸종된 상태라, 10게임 연속 2득점 이하라는 굴욕적인 기록까지 선보였다. 특히 타코 출신이라는 와다가 지휘봉을 잡은 뒤 마유미 시대보다 타선이 더 폭망해[* 이해 1선발 [[랜디 메신저]], 2선발 [[노미 아츠시]] 모두 '''[[윤석민상|승패 마진이 0이거나 마이너스였다]].'''], 결국 시즌 후반에 접어들며 팀이 리빌딩에 들어간 상태. 그리고 2013년엔 그나마 정규 시즌 2위로 올라섰으나, 주니치도 아닌 오랫동안 얼굴을 못 내민 승률 5할도 안되는 3위 [[히로시마 도요 카프]]에게 발리고 광탈. 2014년에는 2013년의 수모를 되갚고 숙적 요미우리를 [[2014년 센트럴 리그 클라이맥스 시리즈|4연승으로 일축하면서]] 일본시리즈에 진출하여 지긋지긋하던 플레이오프 징크스를 털어내나 했더니 일본시리즈에서 우세라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1차전 승리 뒤에 내리 4연패로 또다시 일본시리즈 우승에 실패했다. 게다가 [[니시오카 츠요시]]의 [[3피트 라인]] 룰 위반에 따른 수비방해라는 사상 초유의 막장플레이로 시리즈의 막을 내리면서 모처럼 분전했던 2014년도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기며 마무리했다. 이어진 2015년에도 1위인 상태로 9월에 돌입했으나 이제 신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가을의 풍물시]]라고 불릴만큼 고질화된 막판 붕괴로 3위로 추락. 그 와중에 야쿠르트의 14년 만의 우승을 결정짓는 경기에서 조력자 노릇이나 하고, 히로시마와의 시즌 마지막 경기를 패하면서 시즌의 운명을 히로시마 손에 맡기는 상황까지 연출했다. 결국 히로시마가 시즌 마지막 경기를 진 덕분에 어부지리로 간신히 클라이맥스 시리즈에 진출하는 꼴사나운 모습을 보였다. 결국 와다 감독도 2015년 시즌을 끝으로 경질되었다. 그리고 나서도 이번에는 OB에 외야수이기까지도 한 [[카네모토 토모아키]]를 감독으로 선임했다. 2016년 코치 경력도 없던 카네모토호는 B 클래스를 기록했으나, 2017년 시즌초 1위까지 올라갔으나 [[히로시마 도요 카프]]의 약진과 한신의 DTD 본능(8연패+히로시마전 열세)이 겹치며 잠시 추락, 공동 2위까지 내려갔으나 3~6위 팀들을 잡으며 8월말 단독 2위의 성과를 내고 있다. 그러나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 가을 야구 경험 부족 및 우천 중단 크리를 맞고 다음해를 기약해야 했다. 시즌 종료 후 주전 유격수였던 야마토가 요코하마로 이적하고, 장타력 보강을 위해[* 2017년 한신 타선은 요미우리 OB 스즈키 타카히로도 CS 직전 "(타선의) 폭발력이 없다"라는 [[https://victorysportsnews.com/articles/5543/original|평가]]를 했을 만큼 중요한 경기에서 타선이 안 터졌다.] [[한화 이글스]]에서 [[윌린 로사리오]]를 영입했다. 그러나 로사리오는 한국 프로야구의 개막장 타고투저의 수혜자였음이 드러났고 2017시즌 막판에 싹수가 보이기 시작하던 유망주들은 죄다 퇴보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폭망해서 2001년 [[노무라 카츠야]] 시절 이후 '''17년 만에 최하위'''를 기록했다. 그렇다고 노무라 시절하고 비교하면 안 되는 게 그때는 10년 동안 비밀번호를 찍어서 황폐화된 팀을 재건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가네모토는 우승을 목표로 선임한 감독이다. 이미 노무라의 후임인 [[호시노 센이치|호시노]] 시절 이후로는 우승이 목표이고 목표 달성을 위해서 그 시절과는 비교도 안 되게 풍족하게 지원을 해 준 가운데 기록한 최하위로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성적을 거두면서 이 팀은 프랜차이즈 스타가 감독을 하면 팀이 망한다는 사실만 재확인했다. 그리고 2018년 시즌 종료 후 포수였던 [[야노 아키히로]]가 감독으로 선임되었고, 구단은 [[니시 유키]]를 사왔다. 다행히 시즌 마지막에 연승으로 클라이맥스 시리즈 막차를 탔으나, 요코하마를 이기고도 요미우리에게 패했다. 2020 시즌에는 2위를 차지했으나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 19]]의 영향으로 인해 클라이맥스 시리즈가 취소되면서 요미우리에 대한 하극상의 기회조차 가져보지 못했고, 2021년에도 마지막까지 1위 싸움을 했으나, 끝내 우승을 차지하지 못하고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선 3위 요미우리에 시리즈 스코어 2-0으로 박살났다. 그리고 2022 시즌 시작도 되기 전에 시즌 종료후 사퇴를 공언하더니 개막부터 15 경기에서 1승 1무 14패라는 참혹한 성적을 기록하며 레임덕을 스스로 가속화시켰다. 그래도 [[교류전]]에서 6할이 넘는 승률을 기록해 최하위 탈출 후 나름대로 3~4위권에서 버텨내는 중이다. 그 후로 7월과 8월에 극과극의 성적을 내달렸지만 마지막 4경기에서 3승1무를 거두어 시즌초반 3승 1무 19패를 극복하고 극적으로 A클래스에 진입하였다! 이로써 야노 감독은 재임기간 내내 팀을 포스트시즌에 진출시킨 감독이 되었다. 그리고 2023년, 한신이 프랜차이즈 출신이자 33-4의 장본인이었던 [[오카다 아키노부]] 감독을 다시 선임하였는데 기어코 18년 만의 세리그 우승과 38년 만의 일본시리즈 우승을 만들어내면서 이 징크스를 멋지게 깨는 데 성공했다. 또한 한신 타이거스 역사상 유일하게 선수와 감독으로서 모두 우승을 경험한 인물이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